 |
수산리고분 |
 |
벽화 |
수산리 고분의 시녀는 대가 굽은 박쥐 모양의 검은 곡산을 묘주부인의 뒤에서 받쳐 들고 서 있다. 신분에 따른 위계적인 표현으로 인해 인물이 지나치게 작게 그려져 들고 있는 곡산과의 비례가 맞지 않다. 삼국시대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였기 때문에 표현대상의 비중에 따라 인물묘사를 한 고구려 벽화에서는 귀족과 그를 모시는 시종, 그 외의 평민들은 거인처럼 때로는 난쟁이처럼 작은 크기로 그려져 있는 예가 많다. 수산리 고분은 아름다운 묘주부인과 시녀상으로도 유명하다. 널방 서벽에 앞서가는 묘주부인이 있고 그 뒤로 부인과 시종들이 줄지어 서서 교예를 구경하는 장면이 보인다. 이들 가운데 조그맣게 그려진 시녀가 받쳐주는 일산 아래 서 있는 부인과 시녀는 단정함과 화려함이 조화를 이룬 우아한 여인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산리벽화의 귀족여성은 머리, 치마, 저고리가 모두 길고 풍성하고 늘어진 소매에도 여유가 넘치는 것에 비해 시녀의 의복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삼국시대에서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며, 복식에도 이처럼 신분에 따른 철저한 구분이 있었다. 당시대 여성 전용의 의복으로서 치마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땅에 끌릴 정도였으나, 신분이 높을수록 길이가 길고 주름의 간격이 좁았다. 곡산을 든 시녀는 집을 나선 귀족들의 나들이를 수행하고 있는 하인으로서 머리를 곱게 뒤에서 모아 아래에 묶은 것을 보면 미혼의 여성으로 추측된다. 시녀는 가슴 앞에 손을 모으고 주인을 뒤따라 가만히 서 있는데 좁은 어깨에서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 주름치마까지의 선이 아름답다.
 |
김기웅『고구려 고분 벽화』, 서문당, 2002
이태호 외『고구려고분벽화 별책부록: 고구려고분벽화해설』, 풀빛, 1995
KBS역사스페셜『역사스페셜 』, 효형출판, 2002
유희경, 김문자『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1998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한국생활사박물관』, 사계절출판사, 2001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