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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산을 든 시동 - 원형사진  
수산리고분
벽화

수산리 고분의 곡예장면의 오른쪽으로 관모를 쓴 무덤주인과 부인이 남녀 시종들과 함께 연기를 관람하며 서 있다. 무덤 주인의 뒤에서 시동이 대가 굽은 검은색 양산을 받쳐 들고 서 있다. 신분에 따른 위계적인 표현으로 인물의 크기를 정하다 보니 시동이 든 양산이 너무 커 어색하다.
고구려에서 최하위 신분은 노비이다. 죄를 지은 자는 죽이고 그 처와 자식은 노비로 삼았다. 사람을 죽이거나, 전쟁의 포로, 빚으로 인해 노비가 되었다. 당나라 사신이 고구려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수나라 포로들을 만나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기록을 보면 이들이 노예로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귀족들의 대토지 경영을 가능하게 했고, 화려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각종 허드렛일을 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에서 노비의 숫자가 일반인보다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고구려는 노비가 아니라 일반인이 생산력의 주축이었다. 이들은 시장에서 거래되었는데 평강공주는 온달을 시켜 금팔찌를 팔아 밭과 주택, 소, 말, 각종 기물과 함께 노비를 사오도록 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서는 수묘인을 노비처럼 사고팔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들도 노비로 전락되는 경우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노비는 정상적인 가족구성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며, 별도의 주택에서 거주하기보다는 집안에서 주인들의 시중을 들며 생활했다. 고분벽화에서는 부엌일을 하는 여자노비에게 아비(阿婢)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김기웅『고구려 고분 벽화』, 서문당, 2002
이태호 외『고구려고분벽화 별책부록: 고구려고분벽화해설』, 풀빛, 1995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한국생활사박물관』, 사계절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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