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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가당 소장 「지장시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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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
고려시대 백관들은 상황에 따라 제복, 조복, 공복, 상복 등을 착용하였는데, 그 중 공복(公服)은 조정에 나갈 때 차려입는 예복이라 할 수 있다.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깃이 둥글며 소매통이 매우 넓은 단령포를 입고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손에는 홀을 들었다. 신으로 목이 긴 화를 신었다. 고려의 공복은 제4대 광종 11년(959년)에 제정되었는데 원윤(元尹) 이상은 자삼(紫衫)이고 중단경(中壇卿) 이상은 단삼(丹衫), 도항경(都航卿) 이상은 비삼(緋衫), 소주부(小主簿) 이상은 녹삼(綠衫)으로서, 사색공복 제도였고, 이는 후주의 공복제도였다. 이와 같은 고려의 ‘자, 단, 비, 녹’ 공복색제는 태조 20년 이후 잠정적으로 사용하여온 통일신라의 ‘자, 비, 청, 황’ 혹은 ‘자, 단, 비, 청’의 공복제에 후주의 의관제도 개념이 유입되어 고려 복색제로 정착된 것이다. 경종 원년(976)에 제정된 직산관 품명의 전자과에서도 4색 공복제도에 의한 구별로 관품을 표시하였는데 이는 광종 때의 사색단계를 매개로 그 안에서 문반, 무반, 잡반의 세 구분을 한 것이다. 이는 비록 관품의 고저를 논하지 않고 다만 인품으로 이를 정한다고 한 점으로 보아 태조대의 역분전의 정신이 계승된 것이기는 하나 사색공복의 복색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공복제도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17대 인종(1122~1145) 원년 이래로 공복 형태는 송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잘 나타나고 있다. 『고려도경』에서 보면, 고려 백관 공복은 관모로써 복두를 썼으며 복색뿐만 아니라 대, 어대, 홀 등에도 차를 두어 권위를 나타내었다. 일본 정가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불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에서 판관으로 보이는 자가 복두에 녹색 단령포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2단 모부에 날렵한 후각이 아래를 향해 약간 내려간 모양이며 착용하고 있는 녹색 단령포의 소매가 매우 넓다. 양손을 모아 쥐고 있는 홀은 어두운 나무색이며, 들고 있는 인물의 시선 아래 턱보다 조금 높은 위치까지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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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김문자『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1998
유송옥『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김원용 외『한국의 미 7 - 고려불화 -』, 중앙M&B(랜덤하우스중앙),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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