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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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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
고려시대의 왕복은 제복, 조복, 공복, 상복, 평상복으로 구별되었다. 제복은 면류관과 곤복으로 구성되며 하늘, 땅, 조상, 농신에 제사할 때 착용하였으며 조복은 왕이 백관과 사민을 접견할 때 착용하였다. 상복은 왕의 사무복인데 담황색의 소매통이 좁은 포를 입었으며 자색라(紫色羅)로 한 늑건을 띠었다. 평상복은 서민과 똑같이 백저포를 입었는데 남녀상하가 모두 입었던 옷이다. 고려시대 왕의 공복(公服)은 왕이 사신을 접견할 때 착용하던 복장이다. 자색 공복에 옥대(玉帶)를 띠고 상홀(象笏)을 들었다. 서울 종묘의 공민왕 사당에 있는 공민왕상을 보면 복두를 쓰고 둥근 깃에 소매가 매우 넓으며 옷깃과 수구에는 짙은 색 선이 둘러져 있는 단령포를 착용한 채 홀을 들고 앉아 있는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송나라풍의 복장이라 할 수 있다. 공민왕은 고려의 제31대 왕으로서 충숙왕의 둘째아들이다. 숙위(宿衛)를 위해 원나라에 가서 노국공주와 결혼하고, 원나라의 지시로 충정왕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올랐다. 몽골식 이름이 빠이앤티무르(伯顔帖木兒)라고 전해진다. 원나라가 쇠퇴해지자 원나라 배척운동을 일으키고, 1352년(공민왕 1년) 변발, 호복 등의 몽골풍을 폐지하였다. 1356년에는 몽골 연호, 관제를 폐지하여 문종 때의 제도로 복귀하는 한편, 내정을 간섭한 정동행중서성이문소를 폐지하였다. 1368년 명나라가 건국하자 이에 협력하여 요동에 남은 원나라 세력을 공략하였다. 1369년 이성계로 하여금 동녕부를 치게 하여 오로산성을 점령, 국위를 크게 떨쳤다. 내정에서는 정방을 폐지하고, 신돈을 등용하여 귀족이 겸병한 토지를 소유자에게 반환시키고,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을 해방시키는 등 개혁적인 정치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 뒤 홍건적, 왜구의 계속적인 침범으로 국력이 소모되었고, 1365년 노국공주가 죽자 그녀를 추모하여 불사에만 전심하였다. 그림에 뛰어나 고려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글씨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대자(大字)에 뛰어났다. 작품에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노국대장공주진(魯國大長公主眞)」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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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1999
문화관광부(유희경 외)『우리 옷 이천년』, 문화관광부, 2001
김영숙, 김명숙『한국 복식사』, 청주대학교, 1999
유송옥『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한국생활사박물관편찬위원회『한국생활사박물관 08』, 사계절출판사, 2002
백영자,최해율『한국의 복식문화』, 경춘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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