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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번갑을 입은 장군 - 원형사진  
광주시립민속박물관
복식유물

고려의 전투복에 대한 고찰은 거의 시도되지 않아 당시 전투복이 오히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것보다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일부의 추정은 편견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고려는 주요 무역 상품으로 갑주를 선호했으며, 갑주 제작을 위한 정식 기관이 있었다는 점, 고려 초부터 포형(袍形) 갑옷이 형성되어 조선의 전형적인 갑옷으로 정착되었다는 점 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국가에서 정식으로 관청을 설치하여 갑주 제작을 시도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갑주의 필요성을 인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문 기술인력들이 무기와 갑주를 제작하는 공정이 분업에 의해 이루어져 매우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어서 그 결과 고려의 무기와 갑주는 공예품으로서의 가치까지 품게 되었다. 즉, 고려 2대 혜종 2년 왕의 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진나라에 보낸 물품 중에도 갑주와 무기가 속해 있다.
현재 유물로 남아 있는 고려시대 갑옷은 매우 귀한데, 그 중 철편과 철제고리를 연결하여 만든 정지장군의 경번갑은 보물 제336호로 지정되어 광주시립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고려시대 군대는 크게 나누어 수도 개경에 주둔하는 중앙군과 국경 지역인 양계 지역 및 경기와 남방 5도 지역에 조직된 지방군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중앙군은 2군6위로 편성되어 있었고 지방군의 경우 양계 지역은 주진군, 경기와 남방 5도 지역은 주현군이 편성되어 있었다.
고려 때 중앙군이었던 2군6위란 응양군, 용호군의 2군과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 금오위, 천우위, 감문위의 6위 등 8개의 부대를 가리킨다. 2군위에는 모두 45개의 영이 소속되어 있었다. 고려 때 군사편제 단위였던 1령은 1천명의 군인으로 이뤄져 있었으므로, 고려의 중앙군은 모두 4만5천명이었던 셈이다. 그 가운데 2군이 3령(3천명), 6위가 42령(4만2천명)이었다. 2군6위 안에는 보승, 정용과 같은 부대의 종류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앙군의 정원인 4만5천명이 항상 유지되고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평상시에는 결원이 많아 이보다 그 수가 적었고 전쟁 시에는 그 수가 증가하여 이보다 훨씬 많았다.


박종기『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1999
김영숙『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한국의 갑주』,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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