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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감태를 쓴 양반 남자(최익현) - 원형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회화

조선 말기 문신이자 의병장인 면암 최익현이 심의를 착용하고 머리에 복건 대신 가죽감태를 쓰고 있다. 심의는 그 의복구성상 건곤(乾坤), 4계절, 12월을 구현하며, 부모에 대한 효와 공경 등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선비의 복장 중 한 가지이다.
선비는 학식과 인품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특히 유교 이념을 지키고 따르는 사람을 이른다. 타고난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깊은 철학과 이치를 익히고 행할 줄 아는 인품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그 사람의 인격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이르는 것이다.
선비들의 생애를 살펴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 두 가지는 학업과 벼슬살이이다. 선비는 타고난 신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학문을 연마하고 심신을 수련하여야 비로소 될 수 있었다. 학문을 닦는 것이야말로 선비가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옛글이나 그림 등에서 묘사되는 선비의 전형적인 모습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선비들이 이렇게 학문에 정진한 것은 단지 지식을 많이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하여 도리를 깨우치고 이를 삶에서 실천하여 완성된 인격체가 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선배는 단순한 학자나 문장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 셈이다.
최익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 찬겸(贊謙). 호 면암(勉庵). 경기도 포천(抱川)에서 출생하였다. 1855년(철종 6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 전적(典籍)·사헌부 지평(持平)·사간원 정언(正言)·이조정랑(吏曹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수봉관·지방관·언관 등을 역임하며 강직성을 드러내 불의·부정을 척결하여, 관명을 날리고, 1868년(고종 5년) 경복궁 중건의 중지, 당백전(當百錢) 발행에 따르는 재정의 파탄 등을 들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실정(失政)을 상소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1873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기용되자 명성황후(明成皇后) 측근 등 반(反)흥선 세력과 제휴, 서원(書院) 철폐 등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하고, 호조참판으로 승진되자 다시 대원군의 실정 사례를 낱낱이 열거, 왕의 친정(親政), 대원군의 퇴출을 노골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대원군 실각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으나, 군부(君父)를 논박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형식상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1875년에 풀려났다.
이듬해 명성황후 척족정권이 일본과의 통상을 논의하자 5조(條)로 된 격렬한 척사소(斥邪疏)를 올려 조약체결의 불가함을 역설하다가 흑산도(黑山島)에 위리안치되었으며 1879년 석방되었다. 1895년에는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자 이를 반대하다 투옥되었다. 1898년(광무 2년)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이 되고 뒤에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의정부 찬정(贊政)·경기도관찰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 향리에서 후진교육에 진력하였다.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지고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고종의 밀지를 받고 상경, 왕의 자문에 응하였고 일본으로부터의 차관(借款) 금지, 외국에 대한 의부심(倚附心) 금지 등을 상소하여 친일 매국도배들의 처단을 강력히 요구하다가 두 차례나 일본 헌병들에 의해 향리로 압송당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려 의거의 심경을 토로하고, 8도 사민(士民)에게 포고문을 내어 항일투쟁을 호소하며 납세 거부, 철도 이용 안 하기, 일체의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 항일의병운동의 전개를 촉구하였다. 74세의 고령으로 임병찬(林秉瓚)·임락(林樂) 등 80여 명과 함께 전북 태인(泰仁)에서 의병을 모집, ‘기일본정부(寄日本政府)’라는 일본의 배신 16조목을 따지는 『의거소략(義擧疏略)』을 배포한 뒤, 순창(淳昌)에서 약 4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관군·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패전, 체포되어 쓰시마섬(對馬島)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지급되는 음식물을 적(敵)이 주는 것이라 하여 거절, 단식을 계속하다가 유소(遺疏)를 구술(口述), 임병찬에게 초(抄)하여 올리게 한 뒤 굶어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문집에 『면암집(勉庵集)』(합 48권)이 있다.


정연식『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청년사, 2002
한국역사연구회『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2002
엠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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