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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큰머리여인」(김홍도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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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
기생, 여기, 창기, 창녀 등으로 불리기도 했던 기녀는 가무를 담당하는 장악원(掌樂院) 기생 외에 바느질을 담당하는 침선비(針線婢), 여인의 진료를 담당하는 의녀 등이 있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기녀로는 서울의 경기(京妓)와 지방 고을의 관기(官妓)가 있었는데, 장악원(掌樂院)에 소속되어 악적(樂籍)에 이름이 올라 있는 경기의 주임무는 궁중의 큰 잔치에 나가 가무로 흥을 돋우는 것이었다. 이들은 왕의 사냥이나 온천 행차 등으로 밖에 나갔다가 환궁할 때 어가(御街) 행렬 앞에서 왕의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으며, 외국사신을 영접할 때에도 빠짐없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런 큰 행사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어서 평상시에는 주로 고관들의 잔치에 불려가 전두(纏頭) 또는 연폐(宴幣)라는 팁을 받아 생활하였다. 기녀들에게는 평범한 아녀자와는 달리 온갖 호사스러운 옷과 장식으로 치장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일반 평민들과 달리 말을 타고 다닐 수 있고, 화려한 노리개를 차고 다닐 수 있으며, 머리에는 전모(氈帽) 따위의 입모(笠帽)를 착용할 수 있으며, 금과 은으로 된 머리 장식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사치권은 웬만한 양반부녀자를 능가할 정도였지만, 기생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기생을 보고 즐기는 양반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버선을 낑낑대며 벗는 순간 그 우아한 자태가 망가져 침방 무드를 깨뜨릴까 우려하여 발뒤꿈치 곡선을 눅여 신고 벗는 데 편하게 만들었던 기생의 버선은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예가 될 것이다. 기녀들의 옷 입는 방식을 살펴보면, 일반 부녀자와는 달리 속곳이 노출될 정도로 치마를 치켜 올려 입었으며 저고리 길이를 유난히 짧게 하여 흰 치마허리가 보이도록 하였다. 치마폭은 넓고 길어 속에 입은 십여 가지의 속곳을 덮는 동시에 율동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기녀의 특이한 옷맵시는 이성의 눈을 끌고자 하는 심리와 관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외출 시에 양반녀와 서민녀는 쓰개치마와 장옷을 쓰고 다닌데 비해 기녀는 짧은 처네나 전모를 쓰고 다녀 자신의 얼굴이 타인들에게 잘 보이도록 하였다. 기녀복식의 실루엣은 강-약-강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거대한 머리의 가체와 상체에 밀착된 단아한 저고리, 부풀어 오른 치마의 형상, 치마 아래로 보이는 바지와 신발의 날렵함은 조화로움 속에 긴장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여인의 폐쇄적인 복장과는 반대로 노출에 의한 선정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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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식『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청년사, 2002
금기숙『조선복식미술』, 열화당, 1993
한국역사연구회『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2002
편집부『한국의 미 20 - 인물화 -』, 중앙일보사
정병모『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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