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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룡포를 입은 왕(태조) - 원형사진  
전주 경기전 소장 「조선 태조 상」
회화

태조(1335~1408)는 조선의 건국자로 이름은 이성계(李成桂)이고, 호는 송헌(松軒이다. 출생지는 함경도 영흥(永興)으로 이자춘(子春)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며 특히 궁술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고려 말 신진개혁 인물인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세웠다. 1390년(공양왕 2년) 삼사영사(三司領事)로 승진하였고, 1391년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로서 조준(趙浚) 등과 함께 구신(舊臣)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전제개혁(田制改革)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구신들은 경제적 기반을 잃었고, 그의 일파인 신진세력은 경제적인 토대를 구축하게 되었다.
마침내 1392년(공양왕 4년) 정몽주(鄭夢周)를 제거하고, 그 해 7월 공양왕을 양위시키면서 스스로 새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이듬해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정하고 1394년(태조 3년) 서울을 한양(漢陽)으로 옮겼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과(芳果 : 定宗)에게 선위한 뒤 상왕(上王)이 되고, 1400년 방원(芳遠)이 즉위하자 태상왕이 되었다. 1402년 왕자들의 권력 다툼에서 빚어진 아픔으로 동북면에 가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돌아왔고 불가(佛家)에 귀의하여 여생을 보냈다. 사대주의(事大主義)·배불숭유(排佛崇儒)·농본주의(農本主義)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조선 500년의 근본 정책이 되게 하였고 관제의 정비, 병제(兵制)와 전제(田制)의 재조정 등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곤룡포(袞龍袍)는 조선시대 국왕의 시무복(視務服)을 뜻한다. 곤룡포는 여름에는 사(紗), 겨울에는 단(緞)으로 만들어졌다. 왕은 대홍색(大紅色)에 남색 안을 넣은 곤룡포에 금사(金絲)로 수를 놓은 사조룡보(四爪龍補) 4개를 양어깨·앞가슴·뒷등에 각각 달고, 황제는 황색 곤룡포에 붉은색 안을 넣어 오조룡보를 같은 위치에 단다. 깃은 둥근 곡령(曲領)으로 하여 오른쪽 어깨에서 단추를 끼우며 양쪽의 무의 여분을 뒤쪽으로 반 정도 접어서, 무의 윗부분을 꿰매어 고정시킨다.
곤룡포 착용 시에는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옥대(玉帶)를 띠며 검정색의 녹피(鹿皮)화를 신었다. 태조의 화상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는데, 그것은 명의 고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권오창『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 옷』, 현암사, 2000
신명호『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유희경, 김문자『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1998
김영숙『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유송옥『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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