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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소장 「칼춤」(신윤복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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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
검기무는 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정재무(呈才舞 : 대궐에서 잔치 때 추던 춤)의 일종으로 조선시대에는 보통 2명 또는 4명의 관기(조선시대 관청에 소속된 기녀)가 맞서서 「표정만방곡(表正萬方曲)」에 맞추어 양손에 쥔 검기를 휘두르면서 추었다. 이러한 검기무에는 의주와 진주 기녀가 능했다고 전해진다. 검기무의 유래를 살펴보면, 일곱 살인 신라 소년 황창랑(黃昌郞)이 나라를 위해 백제에서 검무(劍舞)를 추어 유명해지자 백제 왕이 불러 춤을 추게 했는데 황창랑이 검무를 추다가 백제 왕을 찔러 죽이고 잡혀 죽었다. 그 후 신라인들이 그의 충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와 닮은 가면을 쓰고 춤을 추게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검기무가 궁중으로 들어가면서 가면이 없어지고 여령(女伶)이 조선시대 말까지 전승해 온 듯하다. 검무를 추는 기녀는 갑사(甲紗) 치마에 연두색 또는 분홍색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전복을 입고 남색 전대(戰帶)를 착용하였으며, 트레머리를 한 위에 상모(象毛)가 달린 전립(戰笠)을 쓰고 있어 무관의 위엄 있는 모습을 엿보이게 하였다. 『진찬의궤(進饌儀軌)』에 따르면 전립에는 붉은 상모와 공작우(孔雀羽), 정자(頂子 : 물건 위에 꼭지처럼 만든 꾸밈새)가 달려 있다. 전립의 겉감은 산홍모, 안감은 남운문단(濫蕓紋緞)이고, 정자는 은정자(銀頂子), 영자(纓子 : 갓끈을 다는 데 쓰는 고리)는 자적(紫的) 갑사(甲紗)로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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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창『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 옷』, 현암사, 2000
정연식『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청년사, 2002
강명관『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한국역사연구회『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2002
정병모『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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