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들은 외출 시에 여러 가지 복식품목을 사용하여 얼굴을 가렸는데 장옷은 그 가운데 서민층 여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이다. 양반 부녀자들은 치마와 유사한 쓰개치마를 사용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양반 부녀자들까지도 쓰개치마 대신 장옷을 착용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16세기 후반 미암 유희춘이 55세 즈음에 남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옮긴, 정창권의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에는 다음과 같이 반가녀의 외출 준비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다. 1569년 8월 15일 저녁 무렵이었다. 덕봉은 다음날로 예정된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 일찌감치 몸단장을 하였다. 이 날 오후에 임금은 선왕 명종의 신위(神位)를 종묘에 안치한 뒤 다음날 새벽에 제사를 지내고 이른 아침에 환궁할 예정이었다. 이번 행사에는 임금을 비롯해서 신하, 군사, 하인 등 거의 수천 명이 동원되었으며, 미암도 사자위장(獅子衛將)으로 임금 앞에서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 중세의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그것은 가히 화려하고 장대한 행사였다. 덕봉이 등불을 밝히고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땋고 있을 무렵, 옥지가 창문 밖의 툇간에다 세숫물을 떠놓고 들어오면서 아뢰었다. “마님, 세숫물 떠놨사옵니다.” 덕봉은 가벼운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맨 끄트머리를 댕기로 묶으면서 옥지에게 물었다. “어찌 머리가 잘 땋아졌느냐?” “예, 오늘따라 기름을 발라서인지 머리가 아주 반드르 하고 잔털이 하나도 보이지 않사옵니다.” 그녀는 나들이 때문에 모처럼 동백기름을 바르고 머리를 빗었다.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면 모발에 윤기가 생기고 그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덕봉은 길게 땋은 머리를 둥글게 돌려 정수리 가까이에 얹고 비녀를 꽂아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른바 얹은머리를 만든 것이다. 당시 여성들 사이엔 이러한 얹은머리에다 가발까지 드려서 머리 모양을 크고 높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지만, 그녀는 가발의 값이 비싸고 귀찮기도 해서 그냥 자신의 머리로만 멋을 내었다. 창문 밖의 툇간으로 나가보니 둥글넓적한 구리대야에 세숫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에 소매를 걷고 쭈그려 앉아 물이 튀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얼굴에 두서너 번 물을 끼얹었다. 옥지가 팥 따위를 갈아서 만든 조두라는 가루비누를 건네주었다. 덕봉은 그것을 받아서 얼굴과 목덜미 주위에 칠하고 연거푸 물을 끼얹었다. 노폐물이 깨끗이 씻긴 듯하였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방으로 들어가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 앉은 덕봉은 손바닥에 분가루를 조금 떠서 물에 갠 뒤 양 볼, 이마, 코, 입 등에 골고루 찍어 발랐다. 그런 다음 누에고치로 만든 분첩을 가지고 톡톡 두드려 얼굴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하였다. 화장이 어느 정도 끝나가자 옥지가 횃대(옷을 거는 막대)에서 치마저고리 한 벌을 가져왔다. 16세기 여성의 저고리는 전체적으로 풍성한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길이가 엉덩이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치마도 역시 바닥에 끌릴 정도였고 저고리와 치마는 각각 1:1의 비율이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엔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고 품도 좁아진다. 나아가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림이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젖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짧아진다. 반면에 치마는 날로 길어지고 속옷을 7~8겹씩이나 껴입어 더욱 부풀리는 형태로 변한다. 덕봉이 속옷 바지와 적삼 위에 저고리와 치마를 입자 옥지가 장옷을 가져왔다. “마님, 아무래도 장옷을 걸치는 게 좋겠나이다.” 장옷은 깃이 곧고 길이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포로서 당시 양반 부인이 밖에 나갈 때 항상 걸치고 다니던 외투였다. 팔월 중순이라 날씨가 제법 쌀쌀할 듯하여 덕봉은 저고리 위에 그것을 껴입었다. 이렇게 해서 몸단장을 끝마친 덕봉은 옥지한테 뒷정리를 지시하고 방문을 열고 대청으로 나갔다.
이성미『우리 옛 여인들의 멋과 지혜』, 대원사, 2002
장인우『우리나라 16, 17세기 출토복식』, 학연문화사, 1995
정연식『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청년사, 2002
한국역사연구회『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2002
김영숙『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