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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포를 입은 왕(고종) - 원형사진  
궁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종황제」
회화

조선시대 국왕이 삭망(朔望), 조강(朝講), 조강(詔降), 진표, 조근(朝覲) 등의 조하(朝賀)를 받을 때는 강사포를 착용하였으며, 머리에는 원유관을 쓰다가 광무 원년(1897년) 고종이 황제에 오르면서부터 통천관을 쓰게 되었다.
국말 강사포에는 중단 깃에 불문 13개를 금박하였다. 원래 강사포에는 동정이 없으나 고종의 어진을 보면 흰 동정을 달고 있으니 이 점은 국속을 따른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 조하란 조정(朝廷)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례(賀禮)하는 일을 일컬으며 조의진하(朝儀陳賀)의 준말이다. 정월 초하루, 동짓날, 그리고 매월 초하루, 보름 및 왕과 왕비의 생일에는 왕세자를 비롯한 백관(百官)이 조하하였다. 조하 장소가 경복궁일 때에는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일 때에는 인정전(仁政殿)에서 베풀었으며, 특히 정월 초하루와 동지, 그리고 왕의 생일에는 지방관원인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각 도관찰사, 절도사, 2품 이상의 수령(守令) 등은 전문(箋文)을 올려 진하(陳賀)하였다. 조하 때는 ‘전후고취(殿後鼓吹), 전정헌가(殿庭軒架)’라는 주악을 울렸다.
고종은 조선 26대 왕으로서(1852(철종 3년)~1919) 재위는 1863년부터 1907년까지 했고 초명은 명부, 자는 성림, 호는 주연이었다. 영조의 현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로 철종이 세자 없이 승하하자 조대비가 12세의 고종을 세운다. 왕비는 여성부원군 치록의 딸 민씨이다. 조대비는 흥선군을 대원군으로 섭정의 책임과 정사를 맡긴다. 10년 만에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하면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혁명이 일어나 청일전쟁을 유발, 일본이 갑오경장을 단행하게 되어 일본의 간섭을 받기 시작한다. 1895년(고종 32년) 일본은 민비를 살해하고 내정 간섭을 하다 1897년 국호를 대한으로 고치고 연호를 광무로 고쳐 고종은 광무황제가 된다. 1907년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에게 양위시켜 1919년 1월 21일 독살된다.


유희경, 김문자『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1998
김영숙『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1998
유송옥『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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