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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식사(1998)』 2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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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
문무관이 평상시 일을 볼 때의 복식을 관복(冠服) 또는 상복(常服)이라 하는데, 초기의 상복은 머리에 사모를 쓰고 포는 공복에서와 같고 여기에 당상관만이 흉배를 붙였으며 대는 조복에서와 동일하였고 백말에 협금화를 신었으며 홀은 없었다. 그 후 공복에서와 같이 포색에 있어서 상복에서도 변동이 있었으며 당하관도 흉배를 달게 되었다.
16세기 후반 미암 유희춘이 55세 즈음에 남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옮긴, 정창권의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에는 다음과 같이 관복과 관련된 일화가 적혀 있다.
1568년 10월 23일 이른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 조반을 마친 미암은 의관을 갖추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덕봉에게 말하였다.
“내가 본시 이가 많은 사람인데 근래에 와서 보기가 드물어 의심을 했소. 근데 전일부터 다시 많아지기 시작했으니 이젠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소.”
“좋기도 하겠수.”
이 시기 사람들은 죽을 사람에게는 이가 없어진다고 여겼다. 며칠 전에도 미암은 ‘내 몸에 이가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면서 끊이지 않으니 기쁘다’라고 일기에 기록하였다.
장롱 앞에서 미암의 관복을 챙기고 있던 덕봉은 웃으면서 대답하고 철릭부터 관복을 하나씩 내밀었다.
16세기 관복은 철릭에다 단령 혹은 답호를 입었는데 철릭과 단령, 철릭과 답호로 각각 짝을 지어 입었다. 철릭은 첩리라고도 불렀는데 관복의 밑받침으로 입는 포로서 홑, 겹, 솜으로 지어 계절에 따라 바꿔 입었다. 이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 조건 때문이었다. 그 형태는 깃이 곧고 상의와 하의가 1:1의 비율로 연결되었으며 치마 부분에 주름이 잡혀있었다. 대개 명주로 지었고 색상은 흰색, 하늘색, 초록색 등 다양하였다. 단령은 깃이 둥근 데서 유래한 명칭으로 관료들의 평상복으로 착용되었다. 대개 홑이나 겹으로 지었고 색깔은 아청색, 토홍색 등이었다. 답호는 철릭과 비슷한 형태의 겉옷으로 깃은 직령이고 소매가 짧은 것이 특징이었다.
미암은 평소 입고 있던 바지, 저고리 위에 철릭을 입었다. 그리고 단령을 껴입은 뒤 머리에 사모와 이엄을 쓰고 허리에는 각대를 둘렀다.
“어휴! 올봄에 마련한 철릭이 벌써 이렇게 해졌소. 영감이 맨날 입는 옷만 계속 입으니까 일 년도 안 된 옷이 이 모양이잖소. 여러 옷을 번갈아 입어야 오래 입고 빨기도 편한 법입니다.”
미암 앞에서 옷 입는 것을 돕던 덕봉이 그 형편없이 낡은 철릭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꾸중을 하였다. 미암은 의관과 버선이 해어져도 부인이 새것으로 바꿔 주지 않으면 갈아입을 줄을 몰랐다. 그래서 ‘으흠’하고 겸연쩍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없이 출근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덕봉은 평소 미암에게 상당히 많은 옷을 지어 주었다. 1568년 한 해만 두고 보더라도 비록 서로 떨어져 지냈어도 의복만은 철마다 꼬박꼬박 지어주었다. 예컨대 지난 3월 덕봉은 미암에게 편지를 보내 명주베 두 필을 사서 보내라고 한다. 그리고 한 달 뒤인 4월 3일 답호 하나와 직령 하나를 지어서 보낸다. 또 같은 달 8일에는 바지, 단령, 철릭을 하나씩 지어 보내고, 22일에도 바지, 버선, 철릭을 각각 하나씩 보낸다. 이에 미암은 ‘부인이 밖으로 집 짓는 데에 시달리면서 안으로는 옷을 짓기에 시달리니 그 괴로움이 심하다’ 라고 그녀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5월 19일에 덕봉은 다시 미암이 사서 보낸 옷감으로 모시옷 다섯 벌을 지어 서울로 보낸다. 나아가 미암으로 하여금 명주베 한 필을 첩 방굿덕에게 보내서 옷을 짓도록 시키니 방굿덕은 6월 13일에 답호 하나와 철릭 하나를 지어 보낸다.
이날 밤이었다. 내일이 미암의 외조모 기제이므로 집안은 하루 종일 분주하였다. 덕봉은 새벽에 미암을 출근시킨 뒤로 온 종일 부엌에서 미암의 외조모 기제에 쓸 제물을 장만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내외가 등불 앞에 앉아 제상에 올릴 과일을 다듬고 있을 때였다. 문 밖에서 시동 옥석이가 자못 흥분된 목소리로 아뢰었다.
“나으리, 홍문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사옵니다.”
“이 밤중에 대체 무슨 일로 왔다더냐?”
“주상께서 하사하신 의복을 가지고 왔다고 하옵니다.”
미암은 그 소리에 놀라서 재빨리 방문을 열고 대청으로 나갔다. 그가 다니는 홍문관의 하급관리 두 사람이 의복이 든 상자를 등에 지고 마당에 서 있었다. 미암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의복인가?”
“예, 금년 여름 상의원(尙衣院)에서 중국 사신에게 주려고 지은 것으로 극히 화려하고 정한 물건입니다.”
두 사람은 의복상자를 대청 위에 내려놓았다. 미암이 손수 상자를 열어 확인해보니, 아청색 무명베의 단령 하나, 초록색 명주베의 답호 하나, 하늘색 명주베의 철릭 하나, 흰색 모시베의 철릭 하나, 흰색 명주베의 토수(손목싸개)와 행전(다리싸개) 하나, 흰색 비단 적삼 하나, 검정색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 등 출퇴근에 필요한 의복 일체가 들어 있었다.
그는 곧 뜰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대궐을 향해 네 번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해변(해남)에 살던 미천한 신하가 이토록 사랑을 받으니 어떻게 보답을 하리오”라고 말하면서 의복을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하나씩 차례대로 입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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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숙, 김용서『한국복식사』, 예학사, 2001
정창권『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사계절출판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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