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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반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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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
고려 귀부녀들의 복식은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참고하여 파악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부인들은 향유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않고 눈썹은 긴데 검은 비단의 몽수를 쓰며 이는 조라 3폭에 길이 8척이나 되며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을 땅에 끌리게 한다. 흰 모시로 포를 만들어 입는데 거의 남자의 포와 같으며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너른바지를 만들어 입는데 안을 생명주로 받치니 이는 넉넉하게 하여 옷이 몸에 붙지 않게 함이다. 감람늑건을 띠고 채색 끈에 금탁을 매어 달고 비단으로 만든 향을 차는데 이것이 많은 것으로 귀하게 여긴다. 가을과 겨울의 치마는 간혹 황견을 쓰는데 어떤 것은 진하고 어떤 것은 엷다. 또한 왕비의 부인은 홍색을 숭상하여 더욱 그림과 수를 더하되 관리나 서민의 처는 감히 쓰지 못한다. 출가하지 않은 귀녀는 피발하지 않고 황의를 입고 있다”고 하고 있다. 고려 말엽의 조반(1341년 충혜왕 복위 2년~1401년 태종 1년)의 부인은 홍색선을 댄 쪽색 합임포를 입고 있으며 홍색 선을 댄 녹색저고리를 치마 겉으로 입었다. 부인의 포를 보면 다소 이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앞여밈도 없고 띠도 없다. 포 안에는 의, 상을 입었다. 평시에는 의, 상만을 착용하였을 것이며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보면 상하 귀천 없이 백저의와 황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회화에서 보이는 고려 귀부인들의 의, 상 착용양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하나는 통일신라기의 당, 송의 여인 복장처럼 의를 먼저 착용하고 그 위에 상을 걸치는 방법으로 이 같은 방법으로 착용한 예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측되는 거창 둔마리 고분 벽화의 여인상을 들 수 있다. 그 중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진락하는 여인상은 동실서벽의 선인으로 구름 위에 조의를 날리고 있으며 통수의 우임 저고리 위에 치마를 입었는데 치마는 폭과 길이가 넉넉하며 주름은 허리선에만 잡혀 있는 듯하다. 치마허리는 다른 감으로 달고 표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통일신라기의 복식형태와 같다. 원 복속기인 충숙왕 10년(1323) 설충이 그린 일본 지은원 소장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공양인 여인상에는 상류층의 일반 여인인 듯한 모습이 있는데 이들은 단의를 입고 그 위에 군을 입고 있어 우리 고유의 양식과는 다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착용방법은 우리 고유의 착장방법인 치마 위에 의를 착용하는 것이다. 전술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의 우측 여인은 의를 치마 위로 입고 있어 「관경변상도」의 공양인 여인상과는 다른 착용방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의는 고름을 매고 있는데 이는 원 복속기에 접어들면서 몽고복의 영향으로 의(유)의 길이가 다소 짧아지면서 띠가 없어지고 앞에 매듭단추나 작고 실용적인 고름이 생기게 되었는데 바로 그 모습을 유일하게 표현하는 그림이다. 여기에도 동정이 달려 있다. 그러면서 저고리 소매 등도 좁아지는 경향을 느낄 수 있는데 치마는 앞에 허리끈이 길게 늘어졌고 치마폭이나 길이도 다소 줄어든 듯하여 원 복속기 복식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려 여성은 여성이 살기 힘들었던 조선 후기에 비해 오히려 상대적으로 평등한 삶을 누렸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었고, 혼인식은 보통 여자의 집에서 치룬 후 한동안 신부 집에서 함께 살았다. 재산분배 역시 아들과 딸 구분 없이 균등하게 상속되었고 부모가 죽고 난 뒤 지내는 제사 역시 아들뿐만 아니라 딸들도 돌아가며 모셨다.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부부관계에서도 이혼은 잦았는데,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고려인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져 그 예법을 알지 못하니 가소로울 뿐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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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긍『(국역)고려도경』, 민족문화추진회, 1977
유희경, 김문자『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1998
안명숙, 김용서『한국복식사』, 예학사, 2001
유송옥『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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