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 지은원 소장 「관경변상도」 |
 |
회화 |
고려시대 귀부인들의 저고리, 치마 착용 양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하나는 통일신라기의 당, 송의 여인 복장처럼 저고리를 먼저 착용하고 그 위에 치마를 걸치는 방법으로 이 같은 방법으로 착용한 예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측되는 거창 둔마리 고분 벽화의 여인상을 들 수 있다. 그 중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진락하는 여인상은 동실 서벽의 선인으로 구름 위에 조의를 날리고 있으며 저고리 위에 치마를 입었는데, 치마는 폭과 길이가 넉넉하며 주름은 허리선에만 잡혀 있는 듯하다. 치마 허리는 다른 감으로 달고 표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통일신라기의 복식형태와 같다. 또 하나의 착용방법은 우리 고유의 착장 방법인 치마 위에 저고리를 착용하는 것이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에 등장하는 여인은 저고리를 치마 위로 입고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저고리는 고름을 매고 있는데 이는 원 복속기에 접어들면서 몽고복의 영향으로 저고리의 길이가 다소 짧아지면서 띠가 없어지고 앞에 매듭단추나 작고 실용적인 고름이 생기게 되는 모습을 유일하게 표현하는 그림이다. 원 복속기인 충숙왕 10년(1323) 설충이 그린 일본 지은원 소장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공양인 여인상에는 상류층의 일반 여인인 듯한 모습이 있는데, 이들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고 있어 우리 고유 양식과는 다른 통일신라시대의 착용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림 속 귀부인이 착용하고 있는 복식 전체에 화려한 문양이 보이고 있다. 고려의 화려한 직물에 대해서는 일부 문헌을 통해서도 밝혀지고 있는데, 송나라 사람 서긍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고려인은 무척 화려한 옷을 입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고려사(高麗史)』 현종 16년 9월의 기록에서도 정부가 일반 서민이 용과 봉황의 문양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이 기록은 당시 고려 백성들이 용과 봉황과 같은 복잡하고 섬세한 문양으로 수놓고 화려하게 염색된 옷을 즐겨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1078년(문종 32년) 10월에는 백성이 치자색, 담황색 의복을 입는 것을 금하자는 상소가 있었고, 1131년(인종 9년) 5월에도 일반 민중에게 비단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있었다. 그럼에도 일반 백성의 색의(色衣) 착용은 지속되었고, 고려인들은 용과 봉황을 이용한 수준 높은 문양의 고급 옷을 계속해서 입었다고 전해진다.
 |
서긍『(국역)고려도경』, 민족문화추진회, 1977
유희경, 김문자『한국복식문화사』, 교문사, 1998
안명숙, 김용서『한국복식사』, 예학사, 2001
유송옥『한국복식사』, 수학사, 1998
김원용 외『한국의 미 7 - 고려불화 -』, 중앙M&B(랜덤하우스중앙), 1994
|
|
|
|
|